BRAVO MY LIFE 7월 신간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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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국제신문_ 그가 산골로 간 까닭(이인규)
작 성 자 관리자
 
승용차가 많지않던 시절이었다. 주5일근무도 생소한 어느 토요일 오후에 퇴근을 한 그는 본가가 있는 부산으로 가지 못하고 그녀가 있는 시골로 가야 했다.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그가 도착한 곳은 덕유산이 가까운 거창이었다. 원래 목적지는 함양이었지만 간호사로 근무하던 그녀의 병원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병원 앞 정류소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그를 버리고 떠난 지 꼭 일 년 만이었다. 다행히 날씨가 화창하여 주위를 두리번거리느라 그녀의 얼굴이 붉어지는 걸 그는 눈치채지 못하였다. 어색한 웃음으로 간단한 인사를 대신한 그는 그녀가 가리키는 버스를 타고 그녀가 기거하는 마을로 이동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닭 배설물 냄새가 진동했다. 오월의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마주친 마을주민들은 그를 보자, 눌러 쓴 모자를 더욱 눌러쓰고 종종걸음으로 되돌아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주민들이 왜 그런지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그녀와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는 목사 내외를 뵙고 나서 그녀가 기거하는 집으로 갔다. 그런데 기실, 그녀가 사는 곳은 집이라 할 수 없었다. 서까래는 무너졌고 문짝은 다 떨어져 나가 비틀거렸으며 방은 냉기가 가득했다. 그는 그 광경에 억장이 무너졌다. "모두 나 때문이야"하고 그가 내뱉듯이 말하자 그녀 역시 복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그 마을을 다시 찾은 그는 그녀를 못 가게 말리는 한센병 주민들과 목사 내외를 뿌리치고 그녀의 손목을 부여잡고 고향인 부산으로 도망쳐왔다. 그리고 곧바로 그는 그녀와 결혼하여 아들딸 둘을 낳고 잘 살았다.

이십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주5일 근무가 일상이 된 어느 금요일 밤, 그는 퇴근 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동료들과 기분 좋게 술을 마신 후, 아파트로 돌아와 초인종을 눌렀건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집 열쇠로 문을 따 들어간 그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살림살이가 없어진 것이다.

이번엔 지리산이 가까운 산청이었다. 본가와 친구 집을 전전하던 그는 한 달 후에 직장에 휴가를 내고 아내와 아이들이 사는 마을로 찾아갔다. 이번에는 상수리나무가 버티고 있는 마을 입구에 아내가 서 있었다. 그녀가 다시 그를 버리고 간 지 한 달 만이었다. 어색한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그녀를 따라 집으로 갔다. 기와로 된 고택이었지만 그녀가 기거하는 곳은 본채가 아니라 옛날 머슴들이 쓰던 두 칸짜리 방이었다. 겨울이 채 가지지 않은 날에 딸아이가 냉방에서 이불을 덮어쓴 채 동화책을 보고 있었다. 그는 그 광경에 억장이 무너져 그녀에게 "모두 나 때문이야"하고 말했지만 그녀는 그때처럼 울지 않았다. 그 대신 아내는 그의 손을 잡으며 우리 이곳에서 '헨리 니어링' 부부처럼 살자고 조용히 말했다.

그제야 이 모든 게 운명이라 생각한 그는 군소리 없이 정년이 십 년이나 남은, 젊은 청춘들이 그렇게 들어가고 싶어 하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 후 퇴직금과 아파트를 처분한 돈으로 인근 깊숙한 산골에 땅을 매입하고 집을 짓자, 느닷없이 그녀는 그에게 새집에서 살려면 그동안 도시에서 행했던 나쁜 습관을 버려야 한다며 암환자 전용쉼터에 그를 보내버렸다. 그곳은 그의 집보다 훨씬 더 깊은 산골이었다. 결국 그의 고질병인 음주와 흡연을 그만하라는 소리였다.눈 내리는 겨울이었다. 한 달 동안 초주검 상태로 그곳에서 보내던 그는 마침내 눈발이 휘날리던 어느 날, 너무 술이 고파서 두어 시간을 걸어서 읍내로 내려왔다. 그런데 그는 읍내의 허름한 가게에서 낱담배를 피우며 소주를 마시다 그만 아내의 눈에 딱 걸리고 말았다. 그녀의 눈빛은 처참하리만큼 싸늘했다. 그때부터 그는 그녀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완전히 지배되었다.

이쯤 읽었으면 독자들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필자라고 짐작했을 것이다. 내가 아는 지인 중, 어떤 이는 내가 자발적 가난을 몸소 행하기 위해 산골로 갔다고 하고, 다른 이는 도시의 풍요와 편의를 뒤로 한 채 생면부지의 땅에 자유를 찾아갔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 사실이 아니란 것을 밝히며, 이 시각 현재 도시를 떠나고 싶은 자들은 하동 이원규 시인의 시 중,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시지 마시라'는 지엄한 충고를 현실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아니면 말고.

소설가
30   국제신문_ 그가 산골로 간 까닭(이인규) 관리자 2017.02.24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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